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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ur Rós의 몽환적 사운드스케이프와 아이슬란드 음악의 혁신

by inadfor 2025. 6. 8.

Sigur Rós
Sigur Rós

 

서론

 아이슬란드의 전설적인 포스트록 밴드 Sigur Rós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와 요시 비르길슨의 혁신적인 보컬,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몽환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분석합니다.

레이캬비크에서 시작된 음향적 실험과 밴드의 탄생

1994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결성된 Sigur Rós는 단순한 록 밴드를 넘어선 음향적 실험가들이었다. 요시 비르길슨(Jónsi Birgisson), 게오르그 홀름(Georg Hólm), 아구스트 아이나르손(Ágúst Ævar Gunnarsson)으로 시작된 이 밴드는 처음부터 남다른 접근을 보였다. 밴드 이름 자체가 흥미로운데, '시규어 로스'는 요시의 여동생 시규어 로스 엘리아스도띠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요시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그냥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아이슬란드 음악 씬은 비요크와 더 슈가큐브스 정도만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상황이었다. 인구 30만 명의 작은 나라에서 음악으로 성공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추구했다. 1997년 첫 앨범 'Von'을 발매했을 때부터 그들만의 독특한 색깔이 드러났다. 느리고 웅장한 사운드, 그리고 무엇보다 요시의 독특한 가성 보컬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진짜 혁신은 기타 연주 방식에 있었다. 요시는 첼로 활로 기타를 연주하는 기법을 개발했는데, 이게 시규어 로스만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현을 비비는 소리, 울림, 피드백 등이 어우러져 마치 오케스트라 같은 웅장함을 만들어냈다. 이런 기법은 이전에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었다. 초기에는 아이슬란드 내에서도 이해받지 못했다. 너무 실험적이고 상업적이지 않다는 평가였다. 라디오에서 틀어주지도 않았고, 클럽에서 공연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어갔다. 1998년 키보드와 오르간 연주자 클라우스 데일트(Kjartan Sveinsson)가 합류하면서 사운드는 더욱 풍성해졌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그의 참여로 오케스트럴한 편곡이 가능해졌다.

않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어갔다. 1998년 오르간 연주자 클라우스 데일트가 합류하면서 사운드는 더욱 풍성해졌다.

홉풀로 시작된 독창적 언어와 전 세계적 인정

1999년 발매된 두 번째 앨범 'Ágætis byrjun'은 시규어 로스의 진정한 걸작이었다. 아이슬란드어로 '좋은 시작'이라는 뜻의 이 앨범은 정말로 그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이 앨범에서 그들은 '홉풀로(Hopelandic)'라는 독창적인 언어를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실제 언어가 아니라 요시가 만들어낸 의성어와 감정적 표현들의 조합이었다. "라라라", "다다다", "바라바라" 같은 소리들이 멜로디와 완벽하게 어우러져 언어의 벽을 넘어선 감정 전달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정말 혁신적인 시도였다. 가사를 이해하지 못해도 음악 자체로 모든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요시는 "의미보다는 소리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앨범의 오프닝 트랙 'Svefn-g-englar'는 16분이 넘는 대곡이었는데, 지루함 없이 몰입감을 선사했다. 느린 빌드업, 점진적인 클라이맥스, 그리고 카타르시스까지 완벽한 구성이었다. 마치 긴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앨범은 아이슬란드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의 NME, 가디언과 미국의 피치포크 같은 영향력 있는 음악 매체들이 극찬했다.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도 이들의 음악을 높이 평가했고, 브래드 피트, 톰 크루즈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도 팬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2000년대 들어 그들의 음악은 영화와 다큐멘터리에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 자연의 웅장함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적합한 음악은 없었다. BBC 다큐멘터리 '플래닛 어스'에서 그들의 음악이 사용되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2002년 앨범 '( )'에서는 아예 곡 제목도 없애버렸다. 괄호 안에 숫자만 표기하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는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순수하게 소리로만 판단해달라는 의도였다.

영화음악과 라이브 퍼포먼스로 완성된 예술적 경지

2000년대 중반부터 시규어 로스는 영화음악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05년 개봉한 아이슬란드 영화 'Heima'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면서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재능도 입증했다. 'Heima'는 아이슬란드어로 '집'이라는 뜻인데, 그들이 고향에서 진행한 무료 공연들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작품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서 영화의 감정적 중심축 역할을 했다. 특히 자연 다큐멘터리와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빙하가 녹는 장면, 오로라가 춤추는 모습, 화산이 폭발하는 순간들이 그들의 음악과 만나면서 경이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진짜 매력은 라이브 공연에서 드러났다. 스튜디오 앨범도 훌륭하지만, 라이브에서의 시규어 로스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웅장한 사운드 시스템, 몽환적인 조명, 그리고 요시의 압도적인 무대 매너가 어우러져 거의 종교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관객들은 마치 명상에 빠진 듯 조용히 음악에 몰입했다. 2016년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내한공연에서도 한국 관객들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90분 동안 단 한 곡의 앵콜 없이도 모든 관객이 넋을 잃고 감상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을 정도였다. 2013년 앨범 'Kveikur'에서는 좀 더 어둡고 무거운 사운드를 시도했다. 기존의 몽환적 아름다움에 어둠과 긴장감을 더한 것이다. 타이틀 트랙 'Brennisteinn'은 이전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공격적인 사운드를 보여줬다. 2017년 오르간 연주자 클라우스가 개인적인 이유로 탈퇴한 후에도 3인조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들은 한 번도 상업적 타협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만의 고유한 음악 세계를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아이슬란드라는 작은 섬나라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만들어낸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마치 광활한 자연 속에 홀로 서 있는 듯한 고독감과 동시에 우주적 연결감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규어 로스만의 독특한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