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2004년 처음 'Somewhere Only We Know'를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친구가 CD를 빌려줬는데 "기타 없는 밴드야, 신기하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기타 없는 록 밴드라니, 말이 되나 싶었다. 근데 막상 들어보니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톰 채플린의 목소리가 피아노 선율 위로 흘러나오는 순간, 왜 기타가 필요 없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배틀에서 시작된 우정
킨의 시작은 정말 영화 같다. 1995년 톰 채플린, 팀 라이스-옥슬리, 리처드 휴즈가 배틀 컬리지라는 기숙학교에서 만났다. 처음엔 '체리 키퍼드 스노우'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이름부터가 뭔가 몽환적이지 않나?
재미있는 건 원래 톰이 기타를 쳤다는 거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밴드를 떠났다. 대학에 가면서 음악을 그만둔다고 했나? 그래서 팀과 리처드 둘이서만 남게 됐는데, 팀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거다.
그러다가 2001년에 톰이 다시 돌아왔다. 근데 이때는 기타 대신 보컬만 하기로 했다. 팀이 이미 피아노로 모든 멜로디를 다 만들고 있었거든. 그래서 자연스럽게 피아노, 드럼, 보컬 이렇게 세 명의 구성이 됐다.
밴드 이름도 여러 번 바뀌었다. 로터스 이터스, 체리 키퍼드 스노우 거쳐서 결국 킨으로 정착했다. 킨은 톰의 할머니 이름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뭔가 따뜻한 느낌이 든다.
무명 시절의 악전고투
초기 킨은 정말 힘들었나 보다. 기타 없는 밴드라는 게 당시로서는 정말 이상했을 거다. 음반사들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라이브 공연도 거의 못 했다.
그런데 이들이 끈질겼다. 자비로 EP를 만들어서 돌렸고, 작은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처음엔 관객이 몇 명 안 됐는데, 점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특히 런던의 작은 클럽들에서 공연할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관객들이 처음엔 "기타는 어디 있어?" 이런 반응이었는데, 노래를 듣고 나면 완전히 바뀌었다고. 톰의 목소리와 팀의 피아노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던 거다.
2002년쯤부터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음악 저널리스트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라디오에서도 가끔 틀어줬다. 하지만 여전히 메이저 돌파구는 없었다.
'Hopes and Fears'로 터진 대성공
2004년 데뷔앨범 'Hopes and Fears'가 나오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첫 번째 싱글 'Somewhere Only We Know'가 정말 대박이었다. 영국 차트 3위까지 올라갔고, 전 세계적으로도 히트했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I walked across an empty land"로 시작하는 가사부터가 뭔가 특별했다. 피아노 선율도 단순하면서 아름다웠고, 톰의 목소리는 정말 천사 같았다.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었다. 텅 빈 공간에서 톰이 혼자 노래하는 모습이었는데, 뭔가 쓸쓸하면서도 희망적인 느낌이었다. 당시 MTV에서 정말 자주 틀어줬다.
'Everybody's Changing'도 좋았다. 좀 더 록적인 느낌이었는데, 여전히 피아노가 메인이었다. 가사가 좀 철학적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변해간다는 내용이었나?
앨범 전체가 정말 완성도가 높았다. 'This Is the Last Time', 'Bend and Break' 같은 곡들도 모두 좋았다. 특히 'Bend and Break'는 라이브에서 들으면 정말 감동적이었다.
톰 채플린이라는 보컬리스트
킨의 성공에서 톰 채플린의 역할은 정말 컸다. 목소리가 워낙 독특했다. 맑으면서도 감정이 풍부했고, 높은 음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과 비교되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톰이 더 섬세한 것 같았다.
무대에서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크게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진정성이 있었다. 노래할 때의 표정이나 제스처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특히 감정적인 곡들에서는 정말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개인적인 배경도 흥미로웠다. 아버지가 유명한 작가였고, 어릴 때부터 예술적인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사도 시적이었고, 음악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성공의 부담감, 약물 문제 등으로 고생했다고.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 같다.
한국에서의 특별한 사랑
킨은 한국에서 정말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영국 록 밴드들이 인기가 많았는데, 킨도 그 중 하나였다. 특히 'Somewhere Only We Know'는 정말 많이 들렸다.
당시 카페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 곡을 하루에 몇 번씩 틀었다고 한다. 손님들 반응도 좋았고, 분위기도 좋아진다고 했다. 그 정도로 대중적인 어필이 있었다.
라디오에서도 자주 들렸다. KBS 2FM이나 MBC FM 같은 곳에서 킨 곡들을 많이 틀어줬다. DJ들도 킨에 대해 좋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킨은 한국에 내한 공연을 한 적이 없다. 2000년대 중반 정도에 올 뻔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결국 무산됐다. 정말 아쉬웠다. 라이브로 'Somewhere Only We Know'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한국 뮤지션들에게는 영향을 줬다. 피아노 중심의 밴드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킨 스타일의 곡들도 나왔다. 직접적인 카피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영감을 준 건 맞는 것 같다.
'Under the Iron Sea'와 음악적 진화
2006년 두 번째 앨범 'Under the Iron Sea'가 나왔다. 첫 번째 앨범이 워낙 성공해서 부담이 컸을 텐데, 나름 다른 시도를 했다. 전체적으로 더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Is It Any Wonder?'로 시작했는데, 이 곡은 좀 록적이었다. 여전히 피아노가 중심이었지만 더 강렬했다. 톰의 보컬도 이전보다 파워풀했다. 뮤직비디오에서 톰이 물속에서 노래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Crystal Ball'은 좀 더 실험적이었다. 일렉트로닉 요소가 들어갔고, 사운드도 더 복잡했다.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몇 번 들어보니 매력이 있었다.
'A Bad Dream'은 정말 아름다운 발라드였다. 꿈과 현실 사이의 모호한 감정을 다룬 곡이었는데, 톰의 보컬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이런 곡들에서 킨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 같다.
잠시의 해체와 재결합
2013년에 킨이 해체를 발표했을 때 정말 충격이었다. "음악적 차이"라고 했는데, 사실 톰 채플린의 개인적인 문제가 컸던 것 같다. 약물 중독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음악 활동을 중단한다고 했다.
팀 라이스-옥슬리는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Mt. Desolation'이라는 프로젝트도 했고, 다른 아티스트들과도 작업했다. 하지만 역시 킨의 그 느낌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2019년에 갑자기 재결합 소식이 나왔다. 톰이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거였다. 정말 반가웠다.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는데.
재결합 후 첫 공연은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유튜브로 봤는데, 톰이 눈물을 흘리면서 노래하더라. 오랜만에 무대에 선 감격이 컸나 보다.
피아노 중심 밴드의 선구자
킨이 음악사에 남긴 족적은 분명하다. 피아노 중심의 록 밴드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에 콜드플레이도 피아노를 많이 쓰기 시작했고, 코잇 밴드 같은 후배들도 나타났다.
특히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 뛰어났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기억에 남는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Somewhere Only We Know' 같은 곡은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다.
가사도 좋았다. 너무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잘 전달했다. 특히 그리움, 향수, 희망 같은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런 게 킨만의 매력이었다.
프로덕션도 깔끔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건 다 들어가 있었다. 피아노, 드럼, 보컬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가끔 스트링이나 신시사이저가 들어가기도 했지만, 항상 절제되어 있었다.
지금도 계속되는 영향력
킨이 해체했을 때는 이제 끝인가 싶었는데, 재결합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팬들이 많다. 특히 30-40대들에게는 추억의 밴드가 됐다.
최근에는 'Somewhere Only We Know'가 광고나 영화에 자주 사용된다. 존 루이스 크리스마스 광고에서 리메이크됐을 때는 정말 화제가 됐다. 그 정도로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세대의 뮤지션들도 킨의 영향을 받고 있다. 피아노 중심의 인디 팝 밴드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킨을 레퍼런스로 언급하는 경우도 많다.
스트리밍에서도 여전히 인기다. 'Somewhere Only We Know'는 스포티파이에서 수억 번 재생됐다. 2004년 곡이 지금도 이렇게 많이 들린다는 게 신기하다.
킨은 짧은 전성기를 보냈지만 확실한 임팩트를 남긴 밴드다. 기타 없는 록 밴드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고, 피아노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개인적으로는 킨 덕분에 피아노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예전에는 피아노 하면 클래식만 생각했는데, 킨을 듣고 나서 현대 음악에서도 피아노가 얼마나 매력적인 악기인지 알게 됐다.
앞으로도 킨이 계속 활동했으면 좋겠다. 톰의 건강도 많이 나아진 것 같고, 음악에 대한 열정도 여전한 것 같다. 새 앨범이 나온다면 정말 기대된다. 그때 그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