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2008년 처음 'A-Punk'를 들었을 때 뭔가 묘했다. 분명 록 음악인데 어딘가 경쾌하고 세련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친구들이 컬럼비아 대학생들이더라. 그때 생각이 "아, 그래서 이렇게 똑똑한 느낌이 나는구나" 했다. 뱀파이어 위켄드는 정말 독특한 밴드였다. 아프리카 리듬에 클래식 음악, 그리고 미국 동부 엘리트 문화까지 다 섞어놓은 게 신기했다.
컬럼비아 대학 기숙사에서 시작된 이야기
에즈라 쾨닉과 크리스 톰슨이 컬럼비아 대학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2004년이었나? 둘 다 영문학과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냥 친구 사이였는데, 음악 취향이 비슷해서 같이 밴드를 하자고 했다.
그때 크리스 베어와 로스테임도 합류했다. 이 친구들도 컬럼비아 대학생이었다. 네 명 다 명문대생이니까 뭔가 압박이 있었을 것 같다. 부모님들은 음악보다는 공부하라고 했을 텐데.
밴드 이름 '뱀파이어 위켄드'는 에즈라가 대학 시절에 만든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B급 호러 영화를 패러디한 건데, 밴드 이름으로는 좀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이름이긴 했다.
초기에는 정말 대학생 밴드 느낌이었다. 기숙사에서 연습하고, 교내 공연도 하고. 그런데 음악은 절대 아마추어 같지 않았다. 다들 음악적 배경이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에즈라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배웠다고 하더라.
아프로비트와 인디록의 만남
뱀파이어 위켄드 음악의 가장 독특한 점은 아프리카 음악의 영향이었다. 에즈라가 대학에서 아프리카 연구를 전공했는데, 그때 아프로비트라는 장르에 빠졌다고 한다. 펠라 쿠티 같은 뮤지션들을 열심히 들었나 보다.
그런데 이걸 인디록과 섞는다는 발상이 정말 참신했다. 보통은 아프리카 음악 하면 월드뮤직 카테고리로 분류되는데, 뱀파이어 위켄드는 완전히 팝 음악으로 만들어버렸다.
첫 앨범 들어보면 이런 특징이 확실히 드러난다. 기타 리프는 분명 록인데, 리듬은 아프리카적이다. 그리고 멜로디는 또 클래식적이다. 이런 조합이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는지 신기했다.
키보드 사운드도 독특했다. 하프시코드나 스트링 같은 클래식 악기 소리를 자주 썼다. 일반적인 록 밴드에서는 잘 안 쓰는 소리들이었는데, 뱀파이어 위켄드가 하니까 자연스러웠다.
셀프 타이틀 데뷔작의 충격
2008년 데뷔앨범 'Vampire Weekend'가 나왔을 때 정말 놀랐다. 신인 밴드 맞나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Mansard Roof'로 시작해서 'The Kids Don't Stand a Chance'로 끝나는 구성도 완벽했다.
'A-Punk'는 정말 중독적이었다. 2분도 안 되는 짧은 곡인데, 한 번 들으면 계속 흥얼거리게 됐다. 기타 리프가 너무 귀여웠고, 에즈라의 보컷도 밝고 경쾌했다. 친구들한테 추천했더니 다들 "이 밴드 뭐야? 너무 좋은데?" 했다.
'Oxford Comma'는 좀 더 복잡했다. 문법에 대한 노래라니, 이런 주제로 곡을 쓸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역시 영문학과 출신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도 위트 있고 멜로디도 좋았다.
'Cape Cod Kwassa Kwassa'에서는 아프리카 음악의 영향이 확실히 드러났다. 콰사콰사는 콩고 음악 장르인데, 이걸 케이프 코드(미국 동부 휴양지)와 연결시킨 게 기발했다. 동서양 문화의 만남이랄까.
이 앨범으로 뱀파이어 위켄드는 단숨에 인디록 씬의 스타가 됐다. 음악 평론가들도 극찬했고,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거의 필수 청취 앨범이 됐다.
프레피 문화와 음악의 결합
뱀파이어 위켄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프레피 문화다. 멤버들이 다 아이비리그 출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났다. 옷 입는 것도 전형적인 프레피 스타일이었다. 폴로셔츠에 카디건, 보트슈즈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좀 어색했다. 록 밴드라면 좀 더 거칠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들어보니 이런 세련된 이미지가 음악과 잘 맞았다. 오히려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뮤직비디오나 앨범 커버도 이런 취향을 반영했다. 깔끔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에, 색감도 파스텔 톤을 많이 썼다. 일반적인 록 밴드의 어둡고 거친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이런 스타일이 당시로서는 정말 신선했다. 인디록이라고 하면 보통 히피 문화나 그런지 문화를 떠올렸는데, 뱀파이어 위켄드는 완전히 다른 계층의 문화를 가져왔다. 어떻게 보면 엘리트 문화의 인디록 버전이었다.
'Contra'와 더욱 정교해진 사운드
2010년 두 번째 앨범 'Contra'가 나왔을 때는 기대가 정말 컸다. 첫 앨범이 워낙 좋았으니까. 그런데 실제로 들어보니 기대를 뛰어넘었다. 더 정교하고 다양해졌다.
'Horchata'로 시작하는데, 이 곡이 정말 몽환적이었다. 오르차타는 스페인 음료인데, 이런 소재로 노래를 만들다니. 멜로디도 라틴 음악 느낌이 났고, 전체적으로 따뜻한 분위기였다.
'Holiday'는 좀 더 업비트했다. 신시사이저 소리가 80년대 느낌을 줬는데, 동시에 현대적이기도 했다. 이런 절묘한 균형감이 뱀파이어 위켄드의 장점인 것 같다.
'Cousins'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었다. 첫 앨범의 'A-Punk'처럼 짧고 강렬했다. 기타 리프가 정말 중독적이었고, 에즈라의 보컬도 더 파워풀했다.
이 앨범의 커버 아트도 화제였다. 1980년대 폴라로이드 사진을 사용했는데, 저작권 문제로 나중에 바뀌기도 했다. 그런 해프닝도 뱀파이어 위켄드답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의 조용한 인기
뱀파이어 위켄드는 한국에서 메가히트를 친 건 아니었지만, 꾸준한 팬층이 있었다. 특히 대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홍대 일대 카페에서 뱀파이어 위켄드 음악이 자주 흘러나왔다.
당시 온라인 음악 커뮤니티에서도 자주 언급됐다. "요즘 뜨는 인디밴드" 이런 식으로 소개되곤 했다. 특히 음악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거의 필수로 들어야 하는 밴드로 취급됐다.
아이튠즈에서도 꾸준히 차트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스트리밍보다는 다운로드가 많았는데, 뱀파이어 위켄드 앨범들이 상위권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초기에는 내한 공연이 없었다. 2010년대 초반에 한국에 올 계획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팬들이 더욱 아쉬워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나마 한국 팬들과 소통했다. 트위터에서 한국어로 인사하기도 했고, 한국 팬들이 만든 커버 영상에 리트윗을 해주기도 했다. 이런 작은 관심들이 팬들에게는 큰 의미였다.
'Modern Vampires of the City'와 성숙함
2013년 세 번째 앨범 'Modern Vampires of the City'는 정말 걸작이었다. 이전 두 앨범보다 훨씬 성숙하고 깊이 있었다. 대학생 밴드에서 진짜 아티스트 밴드로 진화했다는 느낌이었다.
'Diane Young'은 기존 뱀파이어 위켄드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새로웠다. 60년대 두왑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이었다. 에즈라의 보컬도 이전보다 더 표현력이 풍부해졌다.
'Step'은 정말 아름다운 곡이었다. 소니아 다다의 '24'를 샘플링했는데, 원곡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만들어냈다. 현악기 편곡도 훌륭했고, 전체적으로 영화음악 같은 느낌이었다.
'Ya Hey'에서는 종교적인 주제까지 다뤘다. 뱀파이어 위켄드가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다룰 줄 몰랐는데, 의외로 진지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음악적으로도 가장 실험적인 곡 중 하나였다.
이 앨범으로 뱀파이어 위켄드는 진짜 메이저 밴드가 됐다. 그래미 상도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투어를 했다. 더 이상 대학생 밴드가 아니라 정말 인정받는 아티스트가 됐다.
로스테임의 탈퇴와 새로운 시작
2016년에 로스테임이 밴드를 떠난다고 발표했을 때 정말 충격이었다. 뱀파이어 위켄드의 오리지널 멤버였는데, 갑자기 솔로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음악적 차이라고 했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팬들은 당황했다. 로스테임의 기타가 뱀파이어 위켄드 사운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거든. 특히 초기 앨범들에서 그의 기타 리프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남은 멤버들은 계속하겠다고 했다. 에즈라가 "뱀파이어 위켄드는 계속된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새로운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 팬들도 걱정하면서도 기대했다.
로스테임의 솔로 앨범도 나중에 들어봤는데, 뱀파이어 위켄드와는 완전히 달랐다. 더 실험적이고 개인적인 음악이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뱀파이어 위켄드의 그 매력은 없었다.
'Father of the Bride'와 새로운 장
2019년 네 번째 앨범 'Father of the Bride'가 나왔을 때는 정말 기다렸다. 6년 만의 앨범이었고, 로스테임 없는 첫 앨범이기도 했다. 과연 예전의 그 매력이 남아있을까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전했다. 다르긴 했지만 여전히 뱀파이어 위켄드다웠다. 'Harmony Hall'로 시작하는데, 이 곡을 들으면서 안도했다. "아, 여전히 뱀파이어 위켄드구나" 싶었다.
'This Life'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였다. 댄홀 스타일의 리듬에 현대적인 프로덕션을 입혔다.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몇 번 들어보니 중독적이었다. 뱀파이어 위켄드도 변화할 수 있구나 싶었다.
'Sunflower'에서는 스티브 레이시와 콜라보했다. 젊은 R&B 아티스트와의 만남이었는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세대를 초월한 음악적 교감이랄까.
앨범 전체가 18곡이나 됐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면서도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했다. 이런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뱀파이어 위켄드가 남긴 유산
뱀파이어 위켄드가 인디록 씬에 남긴 영향은 정말 크다. 우선 아프리카 음악과 서구 팝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냈다. 이후에 비슷한 시도를 하는 밴드들이 많이 나타났다.
프레피 문화와 인디록의 결합도 새로웠다. 기존의 인디록이 주로 히피나 그런지 문화에 기반했다면, 뱀파이어 위켄드는 완전히 다른 계층의 문화를 가져왔다. 이런 다양성이 인디록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음악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줬다. 클래식 악기의 활용, 월드뮤직 요소의 도입, 정교한 편곡 등이 다른 밴드들에게 영감을 줬다. 특히 하프시코드나 스트링 섹션을 쓰는 인디 밴드들이 늘어났다.
패션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프레피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고, 특히 인디 음악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폴로셔츠와 카디건이 힙스터들의 유니폼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계속되는 진화
최근 뱀파이어 위켄드는 더욱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에즈라의 솔로 활동도 활발하고,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경험들이 뱀파이어 위켄드 음악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
라이브 공연에서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한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나 어쿠스틱 세트 등으로 기존 곡들을 새롭게 해석한다. 이런 유연성이 뱀파이어 위켄드의 큰 장점이다.
팬층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초기 팬들은 이제 30대가 됐지만, 새로운 젊은 팬들도 계속 생기고 있다. 음악의 보편성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음악을 만든다.
스트리밍 시대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 플레이리스트 문화에도 잘 맞고, 짧은 곡들도 많아서 젊은 리스너들에게 어필한다. 동시에 앨범 전체의 완성도도 놓치지 않는다.
뱀파이어 위켄드는 200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진화하는 몇 안 되는 밴드 중 하나다. 같은 스타일을 반복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하지만 변화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정체성은 잃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뱀파이어 위켄드 덕분에 음악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록 음악이라고 해서 꼭 거칠거나 어두워야 하는 건 아니구나. 세련되고 지적인 록도 충분히 매력적이구나. 이런 깨달음을 준 밴드다.
앞으로도 뱀파이어 위켄드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정말 기대된다. 예측 불가능한 밴드라서 더 재미있다. 분명히 또 우리를 놀라게 할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을 거다. 다음 앨범이 언제 나올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