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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내셔널,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되는 음악

by inadfor 2025. 6. 13.

더 내셔널
더 내셔널

서론

20대 초반에 처음 더 내셔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잘 몰랐다. 뭔가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었고, 매트 버닝거의 저음 보컬도 특이했다. 그런데 30대가 되어서 다시 들어보니 완전히 달랐다. 삶의 무게감, 관계의 복잡함, 중년의 우울 같은 것들이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될 수 있구나 싶었다. 더 내셔널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이해되는 밴드다.

신시내티에서 브루클린으로

더 내셔널의 시작은 1999년 신시내티였다. 매트 버닝거와 스콧 데벤도프가 중심이 되어 밴드를 결성했는데, 나중에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브루클린이라는 도시 자체가 밴드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밴드 구성을 보면 정말 독특하다. 보컬 매트 버닝거, 기타 브라이스 데스너, 베이스 스콧 데벤도프, 드럼 브라이언 데벤도프, 그리고 또 다른 기타 아론 데스너. 데스너 형제와 데벤도프 형제가 함께하는 구조다.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가 밴드의 안정감에 도움이 됐다.

초기에는 정말 무명이었다. 낮에는 다들 각자 직장을 다니면서 밤에 음악 활동을 했다. 매트 버닝거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고,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일이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나중에 그들의 가사에 현실적인 무게감을 더해줬다.

밴드 이름 '더 내셔널'도 흥미롭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좋게 들렸다고 한다. 미국적인 느낌도 있고, 동시에 보편적인 느낌도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초기 앨범들과 서서히 쌓인 명성

2001년 셀프 타이틀 데뷔앨범 'The National'이 나왔을 때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만의 색깔은 확실했다. 어둡고 내성적인 분위기, 복잡한 기타 아르페지오, 그리고 매트 버닝거의 독특한 보컬이 조화를 이뤘다.

2003년 'Sad Songs for Dirty Lovers'에서는 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Murder Me Rachael', 'Cardinal Song' 같은 곡들에서 더 내셔널만의 분위기가 확실해졌다. 특히 가사가 인상적이었는데,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2004년 'Cherry Tree' EP는 작은 전환점이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고, 인디 록 씬에서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About Today'라는 곡은 지금도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곡 중 하나다.

이 시기의 더 내셔널은 아직 완전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방향성은 확실했다. 복잡한 어른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밴드가 되겠다는 것 말이다.

'Alligator'와 인디록 씬의 주목

2005년 'Alligator'는 더 내셔널의 첫 번째 걸작이었다. 이 앨범으로 그들은 인디록 씬의 중요한 밴드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Mr. November', 'Bloodbuzz Ohio', 'Karen' 같은 곡들이 모두 명곡이었다.

'Mr. November'는 정치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었지만, 개인적인 좌절감도 동시에 표현했다. 매트 버닝거의 보컬이 점점 격렬해지는 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I won't fuck us over, I'm Mr. November"라는 가사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Bloodbuzz Ohio'는 고향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다룬 곡이었다. 오하이오 출신인 매트 버닝거의 개인적인 경험이 담겨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이기도 했다.

이 앨범의 프로덕션도 인상적이었다. 피터 카틴과 함께 작업했는데, 더 내셔널의 복잡한 사운드를 잘 담아냈다. 기타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정말 독특했다.

'Boxer'와 완성된 스타일

2007년 'Boxer'는 더 내셔널의 최고작 중 하나다. 이 앨범에서 그들만의 스타일이 완전히 완성됐다. 'Fake Empire', 'Mistaken for Strangers', 'Start a War' 등 명곡들이 가득했다.

'Fake Empire'는 정말 완벽한 오프닝 트랙이었다. 피아노로 시작해서 점점 웅장해지는 구성이 환상적이었다. 가사도 의미심장했는데, 부시 정권 시대의 미국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Mistaken for Strangers'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더 내셔널 곡 중 하나다. 기타 리프가 정말 중독적이었고, 매트 버닝거의 보컬도 최고였다. "You get mistaken for strangers by your own friends"라는 가사가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앨범부터 더 내셔널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했다. 하지만 상업성을 추구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만의 길을 걸었다. 이런 일관성이 팬들에게 신뢰를 주었다.

매트 버닝거라는 보컬리스트

더 내셔널을 이야기할 때 매트 버닝거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보컬은 정말 독특하다. 저음이 주를 이루면서도 감정의 폭이 넓다. 때로는 속삭이듯 부르다가 갑자기 폭발하기도 한다.

라이브에서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보통은 차분하게 노래하다가 곡이 절정에 달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마이크 스탠드를 집어던지거나 관객석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이런 대조가 매트 버닝거만의 매력이다.

가사 쓰는 능력도 뛰어나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포착해서 시적으로 표현한다. 복잡한 감정들을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명확하게 전달한다. 특히 중년 남성의 심리를 다루는 데 탁월하다.

와인에 대한 애정도 유명하다. 인터뷰에서 자주 와인 이야기를 하고, 가사에도 술 관련 내용이 많이 나온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매트 버닝거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High Violet'와 메인스트림 성공

2010년 'High Violet'는 더 내셔널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린 앨범이다. 'Bloodbuzz Ohio', 'Anyone's Ghost', 'Terrible Love' 같은 곡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앨범으로 그들은 완전히 다른 레벨에 올라섰다.

'Bloodbuzz Ohio'는 이미 예전에 발표했던 곡의 재녹음 버전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났다. 특히 후반부의 폭발적인 부분이 정말 강렬했다.

'Anyone's Ghost'는 조금 더 팝적인 곡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더 내셔널다운 우울함은 유지했다. 이런 균형감이 이 앨범의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도 이 앨범부터 더 내셔널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인디 록 팬들 사이에서는 거의 필수 청취 앨범이 됐다. 특히 홍대 일대의 인디 클럽들에서 더 내셔널 곡들이 자주 흘러나왔다.

'Trouble Will Find Me'와 성숙한 완성도

2013년 'Trouble Will Find Me'는 더 내셔널의 또 다른 걸작이었다. 이전 앨범들보다 더 복잡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줬다. 'Demons', 'Don't Swallow the Cap', 'I Need My Girl' 같은 곡들이 인상적이었다.

'Demons'는 정말 아름다운 곡이었다. 스트링 섹션이 들어가면서 더욱 웅장해졌고, 매트 버닝거의 보컬도 감정적이었다. 악몽과 현실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다룬 가사도 좋았다.

'I Need My Girl'은 사랑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었다. 더 내셔널의 곡 중에서는 비교적 직설적인 편이었는데,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 많은 팬들이 결혼식에서 이 곡을 틀었다고 한다.

이 앨범부터 더 내셔널은 진짜 인디록의 대부 같은 존재가 됐다. 젊은 밴드들이 벤치마킹하는 대상이 됐고, 음악 평론가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서의 특별한 위치

더 내셔널은 한국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대중적으로 엄청 유명하지는 않지만, 인디 록 팬들 사이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다. 특히 30대 이상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14년 첫 내한 공연은 정말 기념비적이었다. 올림픽홀에서 열렸는데, 티켓이 빠르게 매진됐다. 당일 공연장 분위기는 정말 특별했다. 관객들이 조용히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트 버닝거가 한국어로 인사했을 때의 반응도 좋았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니까 관객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앵콜에서 'About Today'를 부를 때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내한했는데, 매번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국 팬들의 열정에 멤버들도 감동받았다고 한다. 특히 조용히 집중해서 듣는 분위기를 좋아했다고.

국내 뮤지션들에게 미친 영향도 크다. 더 내셔널 스타일의 인디 록 밴드들이 많이 나타났다. 복잡한 기타 아르페지오, 내성적인 보컬, 시적인 가사 등이 한국 인디 씬에 정착했다.

'Sleep Well Beast'와 가족의 이야기

2017년 'Sleep Well Beast'는 더 내셔널의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준 앨범이다. 멤버들이 모두 가정을 이루면서 생긴 변화가 음악에도 반영됐다. 'The System Only Dreams in Total Darkness', 'Guilty Party', 'Carin at the Liquor Store' 같은 곡들이 좋았다.

'The System Only Dreams in Total Darkness'는 정치적인 메시지와 개인적인 고민을 동시에 담았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 대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었는데, 매트 버닝거가 혼자 춤추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Carin at the Liquor Store'는 매트 버닝거의 아내에 대한 곡이었다. 정말 개인적이고 솔직한 내용이었는데,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 결혼 생활의 복잡함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 앨범으로 더 내셔널은 그래미 상을 받기도 했다. 인디 록 밴드가 그래미를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만큼 음악적 완성도를 인정받은 거였다.

'I Am Easy to Find'와 실험적 도전

2019년 'I Am Easy to Find'는 더 내셔널의 가장 실험적인 앨범 중 하나였다. 여성 보컬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 많이 들어갔고, 매트 버닝거의 보컬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몇 번 들어보니 새로운 매력이 있었다.

게일 베르토티, 리사 한니간, 모나 스타인피니 등 다양한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참여했다. 각자의 개성이 더 내셔널의 사운드와 잘 어울렸다. 특히 'Not in Kansas'나 'So Far So Fast' 같은 곡들이 인상적이었다.

마이크 밀스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도 함께 제작됐다. 앨범과 영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프로젝트였다. 이런 시도 자체가 더 내셔널다웠다.

일부 팬들은 매트 버닝거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어했지만, 음악적 실험으로서는 의미가 있었다. 20년 넘게 활동한 밴드가 여전히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게 대단했다.

더 내셔널만의 특별함

더 내셔널이 특별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일관성이 있다. 20년 넘게 활동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색깔을 잃지 않았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 타협하지도 않았다.

또한 성숙한 감성을 다룬다. 대부분의 록 밴드들이 젊은 에너지를 추구할 때, 더 내셔널은 어른의 복잡한 감정을 다뤘다. 결혼, 가족, 중년의 위기 같은 주제들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음악적 완성도도 뛰어나다.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러 번 들을수록 새로운 면이 발견되는 음악이다.

라이브 퍼포먼스도 훌륭하다. 스튜디오 버전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특히 매트 버닝거의 무대 매너는 정말 독특하다. 차분하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재와 미래

2020년대에 들어서도 더 내셔널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멤버들의 나이가 5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창작 의욕이 넘친다. 최근에는 각자의 사이드 프로젝트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특히 아론 데스너는 테일러 스위프트와의 작업으로 유명해졌다. 'folklore'와 'evermore' 앨범을 함께 만들면서 더 넓은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런 경험이 더 내셔널의 음악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

코로나19 시기에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온라인 공연도 적극적으로 시도했고, 팬들과의 소통도 계속했다. 이런 모습이 진정한 뮤지션의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음악을 만들어줄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는 음악을 하는 밴드니까,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멤버들의 인생 경험이 쌓일수록 더 풍부한 음악이 나올 것 같다.

더 내셔널은 단순한 인디 록 밴드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성숙한 어른들의 음악적 취향을 대변하는 존재다. 복잡하고 깊이 있는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밴드다.

가끔 더 내셔널을 들으면서 생각한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이런 음악의 깊이를 이해하게 됐구나. 젊을 때는 몰랐던 감정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게 바로 더 내셔널 음악의 힘이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음악 말이다.